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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오영호 시조시인 작품방 1 등록일 2016.02.01 22:34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274

=================================<차  례>================================

우수 무렵/ 남해 보리암에서/ 산행/ 비자림/ 콩 심기/ 저녁 한 때/ 용두 해수욕장/스케치 2-겨울 캠퍼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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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무렵


동안거冬安居

공부를 끝낸

수목원 천년 느티나무


손발

막힌 혈을

은침의 햇살들이


콕, 콕콕

쏘아댈 때마다

일렁이는

回春회춘 바람.


남해 보리암에서


나를 찾기 위한 참회의 몸짓인가

벼랑 끝에 쟁여 뒀던 화두 하나 끌고 나와

면벽의 가부좌를 틀고

집착의 끈 놓을 때.

남해 파도소리도 길을 내며 달려오고

백팔 번 절을 하는 꼿꼿한 등줄기 따라

이제껏 쌓인 업장이 녹다 남은 부스러기.

여명의 범종이 울면

돛배에 가득 싣고

오로지 앞만 보며 훠이훠이 떠나리라

이어도, 이어도 사나

별빛 따라 가리라. 


산행


더러는

걸어가고

더러는 기어가는

영실 벼랑길을 오르는 나는 누구인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가야 해

정상 향해 구슬땀이 떨어지는

쉼표 하나 찍어놓듯 버티는 지팡이 끝

안개 낀

안경을 벗어

새로 닦는 길이여.


비자림


일상의 지친 마음 툭툭 털어 놓앗더니

비자향 푸른 바람에 새가 되고 나비 되어

비자림 천년의 설화

뿌려놓은 산책길.


들길 너머 장기소리에 금이가는 숲의 고요

풍란 콩짜개란 솟아오른 새잎들이

무디고 녹슨 내 영혼을

푸릇푸릇 닦아주네.


콩 심기


콩을 심겠다고 조르는 김 교수

'꿩이나 까치밥이요, 헛일하지 맙시다' 해도

땡볕을 머리에 이고 검정콩을 심는다.

얼마쯤 지났을까 싹은 나지 않고

증오의 칼을 가는 내 눈이 솔숲에 닿고

파먹은 궝과 직박구리들 주둥이를 닦고 있다.


저녁 한 때


때가 됐나보다 벚나무 물든 잎들

뚝뚝 떨어지는 포도 위를 걷노라면

어느새 내린 저녁놀 명치끝이 아리다.


곡절없는 사람 있나 바람에 몸을 맡겨

걷다가 달리다가 지쳐 멈추어 설 때

가로등 하얀 불빛에 들춰내는 야윈 꿈.


내 집은 어디 있나 짓다만 시멘트 집

헐렁한 추녀밑에 기대어 앉은 김씨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속울음의 눈빛만.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고양이의 눈을 닮은

별들이 쏟아지는 공연장 골판지에 누워

하현달 가슴에 품고 새우잠을 청한다.


용두 해수욕장


썰물이 빠져나간 아침 백사장엔

허기 진 바다갈매기들 분주한 아침 식사

거품 문 털게 한마리 줄행랑을 치고 있다.


모닥불 핑계 삼아 밤새운 시인 몇이

시와 소설 철학까지 버무려 논 시간 위를

파도가 귀를 세우고 밀려오고 밀려가고.


스케치 2

-겨울 캠퍼스에서


한라산 북쪽 자락 아라동 산 1번지

은행잎 노란 말씀 캠퍼스에 퍼질 때면

동짓달 쌀쌀한 바람 바벨탑을 흔든다


만나면 왁자하던 그 소리 어디 갔나

텅 빈 강의실마다 풀지 못한 질문처럼

창문 앞 느티나무 가지 나뭇잎 몇 개 사이.


'졸업을 축하합니다' 펄럭이는 현수막엔

갈 곳 찾은 동기생들 까르르 웃으 퍼지고

오갈 곳 없는 제자들 가슴팍이 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