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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박연옥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2.04 20:34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413

=============================<차  례>=======================================

생강꽃/ 판잣집 거울/ 다홍빛 서정/ 요양원에서/ 새벽 독경/ 흑장미/ 가을 뜨락/

새벽/ 양파/ 가을 숲에서의 명상/ 민달팽이 보법步法/ 폐교를 가다/ 봄이 와 눕다/ 내 숲의 비밀/ 

============================================================================    

 


생강꽃




고사리


손을 펴면


별빛이


쏟아진다



만지면


팽 돌아설 듯


톡 쏘는


너의 향기


봄밤도


노랗게 취해


달빛 강을


건너가네



판잣집 거울



가파른 돌계단이 길어서 휘어지고


귀퉁이 4층 건물 판자 위의 수선 집


닳아서 뭉툭해진 손, 바람까지 쿨럭댄다


비켜가는 겨울 볕이 그늘진 고독 같다


뾰족한 구두 한 짝 취기로 놓고 가면


넋 놓고 마주한 회벽 새순 돋는 담쟁이




다홍빛 서정



페인트칠 벗겨진 간판 걸린 이발소


삯바느질 푼돈 받아 장만한 함석집


아직도 뉴스 속에는 자막처럼 살아있다


하나둘 아이들은 도회지로 떠나가고


사진 속 빙그레 웃던 시간마저 희미하다


돋보기 건너편으로 다가오는 낯선 여자 




요양원에서





속도감을 잃은 채 공터에 버려지는


가속으로 달려와서 무엇이 남았을까


무중력 타이어끼리 마주보는 얼굴들



노을에 기대이고 휠체어에 앉은 채


가만히 눈동자를 저렇듯 내려놓자


생이란 큰 자국 하나 조용히 지워지는






새벽 독경






혼자 걷는


돌길도


장삼처럼


푸른 새벽



골짜기 돌고 나온


이슬 묻은 독경소리



암자는


벙그는 연꽃


운무 속에


떠 있다




흑장미






울밖에 기다림은


해종일 검게 탄다



그리움에 멍든 마음


먹보다 더 무거워



뼈 하나 가슴에 묻고


숯불인 양 뜨겁다




가을 뜨락



꽁지 하얀


새소리


동동동


떠가는,



안개로


반쯤 가린


산 아래


작은 박샘



격자 창


열린 사이로


오동잎이


지고 있다



새벽

 


누가 걸어갔을까

투명한 깊이 저쪽

 

어둠이 번져 있는

티끌 하나 없는 고요

 

손 닿자

조용한 소명

허공처럼 벙그는 꽃!

 

 

양파

 

몇 구비를 돌아야

너에게 닿을 수 있나

 

겹겹 성곽 두르고

하얀 속살 감추고

 

끝끝내 숨긴 마음을

나이테로 감은 너

 

가을 숲에서의 명상

 

풀무치 늙은 부부 숲 속으로 숨는 시간

 

가을은 하늘 깊이 우물처럼 고이고

 

구절초 보랏빛 꽃은 어제보다 진하다

 

버들치 떼 지어 하얗게 놀던 여울목

 

오늘 밤 귀뚜라미를 날갯짓도 투명하리

 

여름내 목이 쉬던 그 젊은 청매미는

 

느릅나무 아래에서 며칠 전 입적했다

 

잘 익은 도토리 몇 개 몸을 뉘는 지구 한쪽.

 

민달팽이 보법步法

 

형형색색 불빛들이 서서히 빠져나간

깊은 잠 속으로 벌거숭이 집이 한 채

우거진 숲을 헤집고 좁은 길이 나 있다

 

덜 익은 낙과들이 입안에서 부서진다

습기 밴 외벽에다 눌러 적은 이름들

언제쯤 부랑아로 떠돈 이곳서 깨어날까

 

난간을 잡은 손이 파르르 떨리고

느려진 속도만큼 잠적했던 시간들이

갓 헹군 햇살이 되어 연골처럼 푸르다

 

폐교를 가다

 

목청껏 부르면 와르르 반짝이던

 

버려둔 운동장에 누군가 찾아올 듯

 

아직도 푸른 종소리 호명하며 서 있다

 

직박구리 한 쌍이 날아든 빈 교실엔

 

연필로 그리다 만 기억의 뒷모습이

 

헐거운 풍금 소리로 서성이고 있었다

 

봄이 와 눕다

 

절 마당 한쪽으로 볕살이 모인 연못

 

막 바위 그늘 아래 실뱀이 또아리 트는...

 

이승의 허물을 벗고 저리 누운 늦은 봄

 

사계 밖 누가 와서 서성기고 있는가

 

가쁜 숨 되짚고 물그늘 쟁이면서

 

눈부신 수련 한 송이 지금 막 피고 있다 

 

내 숲의 비밀

 

언제나 편안했던 그 길 한 쪽 정거장

엄지를 깨물면서 숨소리 죽여가며

나 혼자 읽어 새기던 울 아버지 비밀 일기

 

자정을 한참 지나 하현달 가는 허리

궁지 몰린 월사금 입술 말라 한숨짓던

등 굽은 세월 저편을 쑥꾹새도 와 울었다

 

돌아보면 허물 같은 그리움의 유산인데

삘기 꽃 환한 골짝 고향 집이 그립다

흙벽의 그 바람소리 지금도 들리는가

 

메마른 하늘이고 논바닥 갈라지던

참았던 울음들을 이제 다 쏟고 싶다 

아버지 다랑이 논에도 단비 흠뻑 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