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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운경희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2.04 21:38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227

======================================<차  례>=============================

오래된 기억/ 초승달/ 성씨 고가에서/ 가을, 저녁 강가/ 무無/ 겨울 산/ 동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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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황학동 만물시장 언제나 북새통이다

 

사람 사는 냄새에 눈 귀 부풀어 오르고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빛의 난장

 

한참도 더 지났을 유행 지난 물건들이

 

새 부품 목 배달고 묵은 때 벗겨내면

 

그림자 제 살을 찾아 새 주인을 맞이한다

 

날마다 기다림의 황홀한 꿈을 안고

 

느릿느릿 흐르는 아코디언 소리로

 

하얗게 낡은 기억들을 재생시키고 있다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진열된 가게마다

 

놀란 침묵들이 부지런히 밖을 보며

 

잊었던 시간 끌고 와 내 발목 묶는다

 

푸르게 요동치는 삶의 저 끄트머리

 

해묵은 LP관 트롯 위로 가로누운

 

황학동 만물시장 안 금세 또 북새통이다 

 

 

초승달

 

그 누가 웅크리나, 도열逃熱의 얼굴 빛

 

세한의 하루를 깁는 허전한 하늘 저쪽

 

빈 가지 난간을 타고 버선발로 걸어간다

 

 

성씨 고가*에서

 

 

푸른 들녘 흔드는 보리밭 놓여 있다

 

담장 총총히 넘는 소나무 휜 가지.

 

마음은 아득한 풍경 정신없이 걸어간다

 

 

댓잎 툭, 툭 치며 높이는 새들

 

슬며시 들어온 바람 넓은 마당 빗질하면

 

빛바랜 기왓장 자락에 가부좌 트는 노을

 

 

 

* 경남 창녕군 대지면 석리에 위차한 하국의 전통 가옥. 문화재자료 355호.

 

 

 

가을, 저녁 강가

 

 

한 번도

그대에게 가 닿지 못하였다

빈 하늘 내려놓은 어스름 저녁 강가

나직이 산자락 안고

제 몸 비워가고 있는

 

스러져간

기억의 편린 울컥, 흘러갔다

잔잔한 물소리 야윈 등 밀어내며

검붉은 강바닥으로 조금씩 가라앉았다

 

별이 지고,

꽃이 와서 또 그렇게 지고

풀벌레들 까맣게 밤을 지새고 간

그 강가 종일 비가 내려

몸이 퉁퉁 불었던,

 

때늦은

우기雨氣가 남긴 맨몸의 미루나무

내 갈증의 출렁임처럼 소리치고 있었다

이제는 지친 물소리 아픈 허리 눕혀본다

 

한 번도

그대에게 가 닿지 못하였다

먼발치 은은한 눈빛, 서늘히 배어나는

가을꽃 향기로 남아

그대를 만납니다

 

 

무無

 

슴 다 비우며 출렁이는 초원

불 꺼진 게르 지붕 위

어둠 내려앉다

 

밤마다

거리 헤매던

한 점 불빛 어딜 갔나

 

별빛 달빛 모두 나와

전라全裸의 모습이다

욕심으로 우뚝 선 나를 베고 눕는다

 

풍성한

양식을 줍던 양 떼

배부름에 잠든 고달픔

 

한 줄기 목 축임으로

쏟아지는 단비

초록의 머리카락 곱게 빗질한다

 

비워서

더 풍요로운

가난한 저 붉은 깃발

 

 

겨울 산

 

휘어진 산허리 경계선 굉음이 숨는다

 

하얀 고무신 속으로

 

독경 대신

 

내리는 비

 

묵묵히

 

서성이던 잎새

 

바람을 키운다

 

 

동행자

 

불타는 조개 집 앞

이름 없는 사연들이

 

아궁이 열기 속 대화체로 익어간다

 

한 접시 수묵이 담겨

연신 해금을 뱉어내듯

 

먼 갯벌 해묵은 얘기 불빛에 쓸려 간다

 

장이 선 메뉴판에

닷 내린 어선 한척

 

위영청, 취한 보름달 소리 없이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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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

경주 출생, 2006년 <유심> 신인문학상 등단, 시집 <비의 시간>,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대구시조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