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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박희정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2.06 11:13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268

===========================<차 례>======================================================

꿈꾸는 핸드백/ 힘/ 명성明星식당엔 명성名聲이 없다/ 건너편 요양원/ 죽방멸치/ 그해, 봄날/ 캐리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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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핸드백

 

귀족의 이미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로망의 상표가 된 낯선 이름에 목을 매는

 

오묘한 복화술 같다, 느물대는 저 명품

 

 

 

산다는 건 어떤 불의에도 굴하지 않는 건지

 

산이 무너지고 터널이 지나가도

 

천성산 도룡뇽 부부 헤어지지 않았다

 

무성한 탁상공론 아랑곳하지 않는 채

 

수맥을 이어주는 무량한 저 생명들

 

에둘러 제 터를 찾아와 목숨 끈을 잇는다

 

짝을 짓는다는 건 천상의 기도 같은 일

 

통설을 깨트려서 세상의 귀 열어놓고

 

대성늪 봄볕 가득한 유백의 알을 보라

 

 

명성明星식당엔 명성名聲이 없다

 

시장한 가을 볕살이 구부리며 닿는 그곳

나무에 숲을 가려 출구마저 찾기 힘든

명성明星은 어디에도 없고 간판만 덩그렇다

 

날마다 마주하던 느티, 골이 깊게 났다

발정 난 수컷은행 바람구멍 막았는지

들마루 거친 결 위로 드센 바람 꽂힌다

 

객기를 냅다 부리며 입맛 거푸 다셨을

한 그릇 매운탕에 막역해질 겨를도 없이

고단한 한 끼 식사를 저녁 별이 끓이는 집

 

 

건너편 요양원

 

 

소나기 지나간 뒤 훅 끼치는 열기처럼

 

큰 고모 오랜 체온이 설핏하게 전해온다

 

햇살에 더 쪼그라진 손바닥의 붉은 상처와,

 

백랍의 머릿결이 살아 있다는 흔적인지

 

들숨날숨 곤두박질하며 맥없이 움찔댄다

 

볼우물 눈빛보다 엷게 오목이 놓인 풍경

 

 

죽방멸치

 

 

내 생은 준비도 없이 처절하게 옭매였다

 

매듭처럼 엮인 채 등지고 나온 바다

 

잔뼈로 씹히는 나날이

수평선에 저문다

 

 

그해, 봄날

 

 

살아생전 약국을 신주처럼 모시던 분

 

서랍마다 수북하게 약봉지 쌓아둬야

 

안심한 눈길을 주며 씁쓸하게 웃으셨다

 

무슨 간식 찾듯 알약을 넘기시며

 

목숨의 고빗길을 잘도 넘기시더니

 

홀연히 자식도 약봉지도 남겨놓은 봄날

 

 

캐리커처

 

 

 

삼월, 그 숲에는 진통이 있었나 보다

 

싸락눈, 진눈깨비, 엉거주춤 덧쌓인 채

 

때늦은 폭설과 잔설, 서릿발의 잔상 같은

 

변신의 꿈을 꾸는 눈꽃이 도드라지고

 

늦도록 접지 못한 지천명의 캐리커쳐

 

잣나무 눈시울 속에 그 눈빛 형형하다

 

 

질감

 

 

영천시 신령 가자 잠시 발길 돌려보세요

맨살의 나뭇결이 고스란히 드러난

거조암 오백나한이 눈인사 짧게 해요

 

어설픈 그대 마음은 그냥 두고 오세요

흙벽의 질감처럼 탱화의 채색처럼

햇살은 변명의 꼬투리를 까슬까슬 말려요

 

오랠수록 기도의 손은 온기로 가득해요

내려놓고 묻어두고 비워내는 그 순간에

좌상불 부신 기울기, 당신을 사뭇 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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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1963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영남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제4회 오늘의시조시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조집 『길은 다시 반전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