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례====================================
한권의 시/ 열대야는 온다/ 말들의 경칩/ 염전에서/ 비둘기의 동선/ 충치/ 젖은 양말은 주머니에 넣고/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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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시
믿음 없는 감정들이
대필 작가 서술처럼
패배를 자랑하며
너로부터 멀어질 때
먼 곳은
멀어지고 나서야
이곳이
되었다
열대야는 온다
심장이 둘이라서 울며 오는 당신은
눈물을 감추려고 샤워기를 비튼다
불볕이
체취로 따라온다
끊어 넘친
일몰처럼
당신의 두 가슴은 태양과 달 같아서
하루만큼 파인 곳 가면 손 엊는다
말없이
불타는 집처럼
탄내를
견디는 밤
여름밤은 원주율로 오는 거라 들었다고
슬픔의 지름은 정확히 하루치였을 까
우리는
다시 안 올 내일처럼
불티같이
울었다
말들의 경칩
당신은 길 끝에서
손 흔들며 나를 밀고
나는 다시 발끝으로
당신을 밀어내고
등 들린 혼잣말을
한 번 쓰고 버린다
당신의 목소리보다
먼저 온 질문 앞에
얼굴을 숨기면서
표정을 표정 짓고
골목은
밤처럼 축축, 축축
공개된 비밀같이
당신은 나의 나는 나의
발끝을 바라보며
거리와 간격 사이
경청과 수긍 사이
말ㄷ르이
말 속에서 빛날 때
봄밤은 깰, 것이다
염전에서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
뒤축의 무게로 새벽 수차를 돌린다
바람은 빈 가슴 지나 먼 바다를 일으키고
지친 오후 밀어내고 살풋 잠이 들자
잠귀 밝은 수평선 해류따라 뒤척이며
뒤틀린 창고 이음새, 덴가슴도 삐걱인다
남편은 태풍 매미에 귀항하지 못했다
소금기 절은 목숨 몇 잔 술로 달랠 때
눈시울 노을로 번져 잦아드는 썰물빛
설움으로 풍화된 닻 말없이 내려두고
무명의 소금봉분, 매다 꽂힌 삽자루여
가슴엔 뱃고동 소리 야윈 달이 차오른다
비둘기의 동선
갈 길을 침범하면 위협하듯 날아간다
각자의 방향으로 서로가 비켜준다
비껴가듯 스친다
지나친 듯 못 본다
간간이 삐져나온 깃털과 노숙들
화살표로 읽어가는 부리와 손톱들
며칠째
눌러 붙은 얼룩
뒤통수를 흘겨본다
충치
무릎에 올려놓은 구걸의 전단지
지하철 엇바디가
순식간 촘촘해졌다
모두가
하던 일 멈추고
졸음을
떨군다
장애인 절뚝이며 다음 칸에 넘어가자
출렁이는 출근객들
발치에 성공했는지
얼얼한
턱 매만지며
비워지는
자리들
젖은 양말은 주머니에 넣고
꽃 폈다고
말해서
피어난
봄밤인데
꽃 진다는
져버린
당신들과
봄비가
왔다간 물웅덩이에
젖은 양말
말리는
밤
그 집
TV만 떠드는 밤
모로 누운 당신의 등
방문들 모두 닫고
넓어진 거실의 공기
식기들
엎어진 자리마다
말라가는
밤의 물기
액자만 빛나는 밤
당겨 덮은 이불 주름
오래된 도마처럼
뒤꿈치 각질처럼
주소가
흩어지는 그 집
센서등이
깜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