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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한희정 시인 시집 <목련 꽃 편지> 등록일 2022.06.16 13:13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57







목련꽃 편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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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제주 서귀포 출생.
2005년 <<시조21>> 등단.
시집 <굿모닝 강아지풀>, <꽃을 줍는 13월>,
<그래 지금은 사랑이야>, 현대시조100인시선집
<도시의 가을 한 잎> 등이 있음.
현재 제주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국제시조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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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앞에서

저 얼룩말 등을 타고
한 문장 얻을까나

밑줄 쫙, 시어 한 줄
방점 하나 찍을까나

도시의 카라반 행렬에
새로운 길 찾을까나



아이야, 나무처럼


비탈 선 나무들은 제 스스로 중심 잡는데

휘면 휜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돌 움켜 생사를 넘듯 뿌리를 내린단다

이따금 언쟁에도 함께 사는 법을 배워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피고 지는

때 되면 몸살을 앓던 산벚꽃도 환하다

아이야, 흔들릴수록 중심을 찾아가지

곶자왈 나무처럼 네가 선 그 자리에

꿈 찾는 이역만리가 발아래 버틴단 걸


갯패랭이꽃


불턱에 잉걸불마냥
오늘따라 더 붉은,

순이어멍 칼질마다
꽃잎 꽃잎 펼치네

바위틈
오도록 오도록
해삼 파는 삼춘들


사막이 되기까지


단 한 번 어긴 죄로
수천 년을 엎드려서

이브의 나신이
모래알이 되기까지...
사하라 성지순례에
발자국을
보탠다


기해독립선언


순둥이 큰딸아이 독립선언 외친다
32년 부모 치하를
'당당하게 벗고 싶다'
백 년 전 독립 만세가 저리 쟁쟁 컸겠지

깃발 닮은 종이 펼쳐 선언문 낭독한다
제주바다 넘는 이유 조목조목 밝히는,
그 앞에 할 말을 참는,
속마음 어찌 알까

저 파도 아무리 높아도 살아갈 기준이면,
걱정 반, 부러움 반
웃음으로 보냈네

휑한 방
만평 적막이
달빛보다 차갑다


그 잠시


시작보다 간절하구나
이레 남은 백일기도

합장한 손 스르르
풍경소리 비몽사몽

그 잠시
혼신을 다해
경전 읽는 귀뚜리


종달리 수국


해안길 수국에선 짠 내가 가득하다
한바탕 몰려왔다가 소금기만 남겨 놓은,
장맛비 젖은 곱슬이 연륜만큼 처졌다

평생 짤린 현무암 위에 맨발로 나 앉아서
진저리 날 것 같은 바다 향해 웃는다
절망도 한 몸이 되어 삶의 무게 보태던...

열길 물속 저승길을 평생 오간 늙은 해녀
즐거움도 괴로움도 소홀한 적 한번 없듯
의연히 빗속에 앉아 보살의 미소 짓는다


종달리


열에 아홉은 하늘만 보이더라
그 닮은 바다 한쪽 나직이 엎드려서
지미봉 산자락에 둔 유월 이야기 듣는다

우우우,
바람이 울면 어린 과부 글썽였다지
한날한시에 피었다 진 이름들이 아파서
더 이상 넘지를 못해 구름도 머물더라

종달리 밟고서야 바다에 이르렀다
보내고 싶지 않아, 떠나고 싶지 않아
아직도 그 이름 부르는 팽나무 늙고 있다


마늘밭 뻐꾹 소리


해풍에 젖고 마르는
알뜨르 마늘밭에

싹둑 잘린 마늘 대궁
햇볕 아래 누워 있네

줄줄이 사월의 현장,
뻐꾸기 울음 우네

견실했던 생앵만큼 말수 없던 할머니,
뒷마당 조부님 묘 이장하던 그날처럼
목이 쉰 호곡소리가 환청인 듯 다가와


슬픈 해후


할머니 가슴팍에 동백꽃이 뭉개졌다
무자년 소개령에 신들도 침묵한 밤
그 이후 울지도 못한 동박새가 되었다

쿵쿵 군홧발보다 더 커진 심장소리
툭하면 가슴 쓸며 선잠 자던 할머니는
새벽녘 연초를 말며 향불인 듯 촛불인 듯

한평생 혼술혼밥 그 누구보다 결연했던,
질기디질긴 여정에도 끼니 한번 거른 적 없이
두어 개 남은 어금니로 생을 달게 씹었다

천수를 누리고서야 다시 찾은 원앙금침
버선발로 지르밟은 시월의 노을 아래
멈췄던 시간을 이은 주렴발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