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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정희경 시인 시집 엿보기 <해바리기를 두고 내렸다>
등록일
2020.09.12 11:05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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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경
65년 대구 출생.
2008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과 2010년 <서정과현실> 신인작품상 당선 등단
현재 <한국동서문학> 편집장과 <어린이 시조나라> 편집주간 맡고 있으며
'영언'동인으로 활동중
시조집 <지슬리>, <빛들의 저녁시간> 평론집 <시조, 소통과 공존을 위하여>
가림시조문학상, 올해의시조집상, 오늘의시조시인상,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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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에 관한 기억
고흐가 선물해 준 해바라기를 두고 내렸다
타히티역 출구에 후두둑 비가 내렸다
떠나온 아를의 방에 해바라기 피겠다
손을 떠난 우산은 사이프러스의 별이 되거나
거울 속 자화상으로 선명히 남아 있다
원시의 타히티섬엔 해가 반짝 나겠다
씨앗호떡
남포동 고소한 줄 운초시장 건너왔다
마흔 둘 이력 적힌 노총각의 종이컵
차지게 늘어진 오늘 따뜻하게 담겼다
몇 번을 주물러서 숙성된 햇살 덩이
고시원 전전하다 발길이 멈춰있다
씨앗을 가슴에 품어 발아하는 내일처럼
구름이 모여 사는 운촌시장 그 처마 끝
뜨거운 프라이팬 버터기름 흥건해도
씨앗은 손길을 따라 한 송이 꽃 부푼다
대서
代署
몸 빨간 소쿠리에 푸른 사과 너덧 알
운촌시장 한길가 뙤약볕에 나앉았다
온종일 누렇게 뜬 얼굴 기다림이 나른하다
단내 쫓던 초파리들 초점이 흐려진다
물기도 말라가고 아삭함도 지워지고
푸석한 몸뚱어리들 날이 함께 저문다
에펠탑
어릴 적 잃어버린 아버지의 사다리
먼 시간을 달려와서 센강에 서있다
별 하나
따러 가시던 내 유년의 아버지
풀 고갱을 그리다가 몽마르트에 잠든 날들
화폭을 가득 채운 현란한 색채 너머
쌀 한 줌 일상의 기도는 당도하지 않았다
불 켜진 긴 사다리 도시에 별이 뜬다
녹이 슨 계단 따라 센강은 삐걱이고
벽면의 풍경화 한 점
사다리를 오른다
갈치젓
통곡의 제주 바다 토막토막 절인다
억새가 꽃 피려면 아직도 먼 봄인데
살아서 퍼덕이는 해 다랑쉬를 오른다
은빛 비늘 일제히 파도로 밀려가는
삭을 대로 삭아서 하얗게 밀려가는
밀려서 미어진 자리 눈물꽃이 벙근다
그날을 뒤집으면 짠 내만 남아있다
봄날이 지워진 채 문드러진 가슴 한켠
중산간 다랑쉬마을 억새들이 절여있다
철거 2
재건축 운촌마을 잡동사니 버려졌다
몇십년의 습관 위로 겨울바람 삐걱이고
늦은 밤 길고양이들 웅크리다 돌아간다
양은 냄비 세발자건거 집게차에 끌려갔다
입주권 받아 들고 다시 오마 약속 뒤로
별 하나 떠나지 못해 글썽
이는 골목길
박태기 나무
울 할매 어제 흘린 밥풀때기 몇 조각
꽃대
따윈 필요 없어 나무 몸에 붙어 핀다
아범아 밥이 참 곱제 식기 전에 마이 무라
밥심으로 살았는데 살아서 견뎠는데
어무이 이제 이게 어무이 밥줄이라요
링거 줄 자꾸 뜯어버리는 요양병원 98호
민들레 경로당
재건축 아파트가 씨방처럼 부푸는 길
옹기종기 무여 핀다, 운촌의 노란 대문 집
꽃잎은 날려 보내고 지팡이만 남았다
화투 패로 점쳐보는 꽃씨들의 늦은 안부
바람에 흔들리다 지팡이는 여위는데
아파트 창가에 걸려 저녁이 오고 있다
석빙고
꽁꽁 언 긴 겨울을 통째로 가두었다
수시로 찾아드는 비바람 눌러놓고
쩍 하고 금이 가는 하루 못 들은 척 안 본 척
커튼 자락 무거운 철거촌 남은 빈집
고지서 붉은 글씨 우편함에 쌓여가고
안으로 들지 못한 햇살 두껍게 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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