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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임영석 시인 시집 엿보기 <참맛> 등록일 2020.09.16 10:39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98



임영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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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1961년 충남 금산군 진산면 엄정리 출생. 논산공고 기계과 졸업.
1985년 《현대시조》 봄호에 「겨울밤」으로 2회 천료 등단.
시집으로 『이중창문을 굳게 닫고』 『사랑엽서』 『나는 빈 항아리를 보면 소금을 담아놓고 싶다』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 『고래 발자국』 『받아쓰기』,
시조집으로 『배경』 『초승달을 보며』 『꽃불』 『참맛』,
시조선집으로 『고양이 걸음』, 시론집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이 있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2년·2016년·2018년 강원문화재단,
2018년·2020년 원주문화재단에서 각각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2011년 제1회 시조세계문학상, 2017년 제15회 천상병귀천문학상 우수상, 2019년 제38회 강원문학상을 받았다.
1987년부터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2016년 희망퇴직을 하고 글만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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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밭에서


누구는 참깨꽃을 범종이라 말을 하고
누구는 참깨꽃을 등꽃이라 말하지만
이 꽃은 고소한 맛을 낚아내는 미끼다


참으로 고소하고 황홀한 방법이다

참깨밭 근사하고 허공에 던져놓고

참맛을 낚아내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


범종처럼 매달아서 등꽃처럼 매달아서

허공에 던져놓고 기다리는 저 배짱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낚시다




참맛




말 속에 뼈가 있어도

그 뼈는 귀가 고르고


눈과 코가 못 먹으면

음식이라 할 수 없다


참맛은

뼈 있는 말을

가슴으로 먹는거다






늦가을에



햇살이 아까워서 말린 곡식을 또 말리고

바람이 아까워서 까분 깨를 또 까분다

이렇게 아까운 것만 자꾸 눈에 들어온다


달빛이 아까워서 새벽까지 잠을 설치고

별빛이 아까워서 발만 동동 구르는데

아내는 아까운 마음 동치미로 담가둔다




안흥 찐빵



안흥의 보름달은 수백 개의 알을 슬어

날마다 가마솥에서 제 새끼를 키워내면

가마솥 날이 나도록 그 새끼를 잡아 판다


보름달이 슬어놓은 안흥 찐빵 얼굴은

눈도 코도 둥글둥글 입도 귀도 둥글둥글

형 아우 구분 못하게 다 똑같이 생겼다






일벌에 대하여



일벌의 수명은 고작 육십 일뿐이란다 

신은 이 일벌에게 무슨 사명司命을 주었는지

꽃들의 연애사까지 속속들이 알게 한다


일벌의 짧은 수명 그 이유를 알아보니

꽃들의 자궁 속에 흘레질한 비밀 하나

영원히 묻어두려고 제 목숨을 버린다


겉으로는 일만 하다 죽어간다 말하지만

꽃들의 많은 달에는 채 한달도 다 못 살고

꽃들의 유혹에 빠져 과로사로 죽어간다






탁본



내 삶을 탁본 뜨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

저 별도 어느 누가 검은 먹물 탕탕 찍어

탁본을 곱게 뜨는데 그 빛이 너무 곱다


오늘 밤 내 마음에 먹물을 찍어 바르고

얼마나 밝은 빛의 등불이 보이는지

탁본을 뜨고 뜨는데 검고 검은 어둠뿐이다


저 별들 수만 년을 허공에 떠돌면서

세상일 다 보고도 못 본 척 두 눈 감고

외로운 사람 가슴에 매일 와서 놀고 간다






바다 한 쪽



갈매기가 바다 한 쪽 , 뚝 떼 물고 날아간다

제 입이 크기만큼 물어뜯은 그 자리에

별빛이 와서 눕고는 떠날 줄을 모른다


해안가 파도들이 제 분을 못 참고서

별빛을 밀어내려 아우성을 쳐대지만

등대는 제 자리 서서 알은체도 안 한다


어부는 그 바다에 그물을 펴보지만

별빛은 다 놓치고 주워 담은 파도 소리

반백 년 세월이 흘러 문신처럼 새겨졌다






슬픔보다 기쁨이 더 예쁘다



물만 먹고 자라는 콩나물을 키워보면

슬픈 날 물을 주면 슬프게 자라지만

기쁜 날 물을 주면은 기쁜 만큼 키가 큰다


물은 항상 그 물이고 내 마음이 다른데도

콩나물은 물속에서 내 마음을 알아내어

기쁘게 물을 안 주면 물 한 모금 안 먹는다


봄마다 꽃이 피는 꽃나무을 바라보면

울고 있는 나무보다 웃고 있는 나무들이

꽃들도 먼저 피우고 향도 곱고 더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