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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아
2004년 <시조월드> 등단
시조집 <부침개 한판 뒤집듯>, <달콤한 역설>, 온천천 서사시조집 <내 안에 오리 있다>
동시조집 < 학교에 온 강낭콩>, 시선집 <옆자리 보고서>
제5회 부사시조 작품상 수상, 현) 부산시조시인협회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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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DNA
에움길 넘나들던 느려서 시린 걸음
동트기 빌고 앉아 손바닥 닳아가던
한 소절 메나리조에
목이 메는 사람아
타들던 가슴 반쪽 잔기침 쿨럭이며
열흘을 앓다가도 먹은 귀가 틔는 소리
걷어낸 어둠을 살라
붉어지는 사람들
바람은 흘러흘러 광장으로 이어진다
풀뿌리 얼싸안는 녹슬지 않을 노래
푸른 물 맥박이 뛰는
손에 손이 둥글다
임시정부청사
흐릿한 책갈피에 얼비친 핏자극들
망명의 살얼음판 타전된 밀지인 양
지워진 창문 저쪽은 봄기운이 감도는데
눈시울 붉은 상해 낯선 허기를 따라
덜 끝난 맺음말이 자막을 돌고 돈다
빌려 쓴 하늘 귀퉁이 가파르던 그 숨길
소원이 독립이던 발자취 찾아들면
정통성 입에 올리는 허상이 부끄럽다
뒤돌면 멀어질 것 같아
아리도록 주먹 쥔다
이방인
뽑아도 뒤엎어도 어디서 나오는지
장마철에 더 드세지는 초대받지 못한 풀들
뿌리를 들추어내려
물집 생긴 손바닥
편지함 기웃대며 꼼수로 분탕 친다
메일을 잘못 열다 뒷목까지 화끈대는
읽은 것 게워내고서
차단벽 도 쌓는다
웹서핑 귀퉁이에 가시로 돋아나는
제 모습 꽁꽁 감춘 피투성이 말의 씨앗
나쁜 손 서로 빌리며 수천만 리 날고 있다
양말 트럭
낙엽들만 뒹구는 퇴근길 한가운데
달려야 할 바퀴들이 멈춰 선 채 묶여있다
포장을 풀어놓으면 피어날 갈래갈래
문턱을 올라서는 기대치 돌고 돈다
발 디딜 터 고르는 취준생 어깨 위로
즐비한 생의 무게가 삭바람에 매달린다
어디든 달리고픈 낙엽 닮은 이력서
포개진 시간 얼개 밑그림 그리고 있는
눈높이 자꾸 낮춘다
열 켤레에 오천 원
이정표
칼집에 가두어둔 무딘 날을 만져본다
서늘한 중력 깔고 밀고 당긴 무지개
다 썩은 호박이라도 대쪽같이 잘릴까
나이를 먹는 것은 뱉은 말 모서리 갈고
듣는 말 가장자리 거친 면 삭이는 일
늦은 밤 귀를 후빈다
는 감다가
다시 뜬다
메마른 단톡방이 불면을 부추기는
겨우 지핀 공분公憤도 밤이슬에 맥 풀린다
갓밝이 비쳐 드는 창
잊힌 길을 벼린다
꼬리연
줄줄이 거느렸다 꽁지에 불나도록
바람길 타고 넘다 날개도 휘청대는
그 겨울 주저앉은 채
날 수 없는 그림자
십여 년 신불자로 숨어 사는 맏아들 놈
대물린 가난 앞에 비틀대는 둘째 녀석
덜 꼽은 손가락 사이 고개 떨군 벚나무
줄 끊어진 어르신네 허공이 가파르다
등골 휘던 꼬리마저 떨어진 언덕 너머
알들폰 만지작대는
한낮 공원 흐리다
오늘도 물망초
가슴에
묻은 꽃은
잎 하나 놓지 못해
반 토막
내쉰 숨이
절반을 당겨 문다
짓무른
사월 눈자위
성긴 꽃대 돋는다
저녁 강
마지막 숨을 몰아 쏟아내는 구어체들
빼곡한 말씀 뒷면 붉은 물 들고 있다
아우른 언저리마다 푸른 내일 덧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