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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서일옥 시인 시집 엿보기 등록일 2020.07.23 20:25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406



서일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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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옥

199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영화 스케치 ,<그늘의 무늬> , 현대시조 100인선 <병산우체국>, 동시조집 <숲에서 자는 바람>
경남시조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성파시조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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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꽃


이 세상
밝은 것들
모두 네가 가지렴

이 세상
고운 것들
그것도 네가 가지렴

온 세상
등불을 켜든
티 없는 꼬마 천사들


와불


자갈길을 구르는 듯한 구로행 지하철 안에
볼이 환한 애기 둘이 경로석에 잠드셨네 
얽히는 다리 사이로
보름달처럼 둥실 떴네

허기져 몰려오는 퇴근길의 피로가
와불처럼 누워 있는 눈부신 풍경 앞에
스르르 녹아내리네
만다라 꽃이 피네


하이힐


어느 겨울 받아 든
출생의 운명처럼
가도 가도 높고 가파른
하이힐이 여기 있다

찬바람 무찌르려고
찬바람 허리에 감고

세상은 목마르고 뜨거운 사막이었다
그 길을 여자 하나가 절며 걸어간다

똬리 튼 파충류처럼
맹독의 입술을 하고.....



옹기



시간도 오래 익으면 먹빛을 닮아 가는가
구십 년 세월이야 빗금도 가겠지만
밑동이 흔들거려도 미동조차 없더니

천둥이 지나가고
비바람 몰아치고
애먼 석류나무 꽃가지 찢겨져도
귀 먹고 눈이 먼 채로 종가를 지키더니

이제는 말문을 닫고 그 아픔 삭이는지
엉겅퀴 꽃대 같은 슬픔을 삼키는지
마지막 불빛을 켜든 채
고요 깊은 어머니 같은...



따뜻한 동거


말라가는 소나무 분재를 거실에 옮겨놓고

해오름에 물을 주고 지성으로 가꾸는데

그 작은 돌 틈 사이로

고개 내민 애기단풍


좁고 좁은 틈 사이를 조금씩 내어주며

긴긴 밤을 기도하며 서로를 응원했구나

잊었던 문장부호 같은

꽃망울이 일어섰다



봄날의 화해



보도블록 한 켠에 수선 집을 차린 사내
조금식 상처 입은 신발들을 보살피는 꼿
반 평도 못 되는 공간
연중무휴 성업 중이다

실밥이 터진 자리 밑창이 닳은 자리
남루를 잘라내고 희망에 살을 붙이면
그 작은 경영 속에서도 한 뼘만큼의 꿈이 큰다

곁방 살러 들어온 민들레꽃이 피고
한쪽다리 절룩이는 고양이도 쉬다 가는
'고객이 온돌'이라는
문패 더욱 정겹다 



흑장미



살과 살이 부대끼며 맞닿은 곳에서는

언제나 상큼한 침향이 묻어난다

입술이 짙어질수록 하늘은 더 높아지고


공장 울타리에 플레어스커트 입은 그녀

"힘내세요. 힘내세요"

응원가를 불러주며

출근길 바쁜 길목에 연신 하트를 날린다



몸의 경전



엿가락처럼 늘어진 몸의 뼈들 반란이다
마흔두 해 혹사에 덤만 얹어 주었고
하루치 호사도 없이 앞만 보라 내쳤으니

진즉에 다독다독 이음새를 돌아보고
엽엽한 그 기상에 보약 한 재 올렸다면
바람이 뼈마디 새를 지나가지 않았으리

침묵도 아품을 인내하는 증거란 걸
그림자도 때로는 내 것이 아니란 걸
돌층계 내려오면서 비로소 깨닫는 밤






물앵두 닮은 빛깔 내 사랑의 시편을

온종일 서제에서 모으고 걸러내도

잡힐 듯 또 멀어지는

술래잡기 낱말놀이

팔월의 숲들이 엠블럼을 내밀며

저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어 보라 하네

가까이 귀를 대보면

아, 청동의 징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