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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효
1999년 <현대시조> 추천, 200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김만중 문학상, 천강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수상
시조집 <무시로 저문 날에는 슬픔에도 기대어서라>, < 노다지라예>, <죽고 못사는>, <컵밥3000 오디세이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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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머리오목눈이
미혼모 오목눈이가 뻐꾸기를 기르고 사네
소문이 꼬리를 물고
사미니 새끼라 하네
피붙이가 버린 것을 살붙이가 알을 품어
제 새끼 내친 놈을 모성으로 거두고 있네
철새도 텃새가 되어
다둥이와 함께 사네
생면목 부리로 캐는 치사랑 내리사랑을
자연은 어머니라서 생명의 둥지라 하네
사랑엔 모반이 없네
사람의 땅 말고는
돼지갈비
화덕 위 연탄불에 양념갈비가 익어갈 때
희망퇴직 첫 잔부터 딸꿀질이 시작된다
오래된 외상값 갚듯 위하여를 나누며
고추장 양념 속에 육즙이 스며들 시간
조선사 구조조정이 끝나기도 아직 전인데
명퇴금 웃돈에 얹혀 첫 패를 덥석 물었다
마지막 잔을 들면 굳은 악수로 헤어진다만
다음 만날 약속을 누구도 하지 못한 채
철판 위 뻘거숭이들 엎치락뒤치락 살고 있다
구인시대
퇴직금 4대 보험 신축 단독 원룸 제공
기본금 이백오십에
무지개 수당 a도 있음
통장이 텅텅 비어 텅장이라 부르지만
집에서 먹는 혼밥 밖에선 컵밥이 있어
알바에 투잡을 뛰는 신종 노마드족이 산다
교차로 광고지가 비에 젖어 뒹구는 밤
사람 위에 사람 많고
사람 아래 사람 없어
구하는 사람은 많도 구하는 직업은 없다
맨발의 남자
옥봉동 산1번지를 끌고 갔다 메고 오는
신발을 고쳐 매고도 못 오르는 오늘의 남자
직립의 형과 벌을 발목에 함께 묶어
어제는 등 내일은 어깨 애옥살이 형벌 앞에
간난의 작두날 위를 홀로 걷는 빈손의 남자
죄라면 아비의 죄
빚이라면 남편 된 빚
선학산 허리를 안고 소주잔에 투항하다
새벽달 늦저녁 별에 눈치레하는 비탈갈 남자
피고지고 개망초
누우면 벌써 죽고 느루걸어 오래 살아라
잊을라, 잊지 말아라, 기다려 안 오는 사람
길 멀다 많이 먹고 해 길다 꿈도 꾸며
웃어라 원도 없이 하마 올 내일을 위해
눈 뜨고 실컷 아파라 웃어야 살고 울어야 산다
낙엽 레퀴엠
몌별의 발소리 끝에 빈손 한 움큼인데
저 손짓 침묵을 깨워 흐느끼는 해어화다
숨소리 펄럭이면 산자락이 들썩이는데
갈 때도 뒤꿈치 들고 온다 간다 한마디 없이
이승과 저승을 잇는 바람 장삼 노름마치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쇠뜨기 쓱부쟁이 밟히며 사는 것들이
빈털뱅이 깡통 같은 채이며 우는 것들이
하찮고 보잘것없이
꽃 지고 꽃 핀다 한들
개미나 지렁이가 기어가고 기어온들 날구멍 들구멍에
쥐새끼 날고뛰든지 쭉정이 들뜬 마음쯤 있어도 없고 없
어도 있는 바람과 맞바람 걸바람 칼발람아 뿌리도 가지
도 없는 이재민 문바람아 숨탄것 목숨을 끓는 피죽바람
서릿바람아
오금저린 땅 위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의 쓸모 없는 쓸모가 되어
막다른 골목 뒤곁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