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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1940년 제주시 광양 출생
1984년 제1회 <아동문예>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으로 등단,
<날개의 꿈> 외 4권의 동시집과 <꽃잎 밥상> 등 동시조집 5권이 있음
제3회 제주시조 지상백일장 장원후 제10회 <나래시조> 신인상 당선으로
<갈무리하는 하루>, < 내 안의 가정법> 시조집을 펴냄
제30회 한국동시문학상, 제9회 제주문학상, 제2회 새싹시조 문학상, 제16회 제주특별자치도 예술인상을 받음
명함
이름 달고 누운 명함 피사리하듯 뽑아낸다
꽃들이 생기 잃어 아름다움 다하면
시들어 쓸모없듯이 쓰레기 신세 아닌가
서로 소용되기로 악수하며 만난 그날
받은 명함 오늘 보니 처음인 듯 생소하다
뉘 손안 내 명함들도 이 처지 못 면하리
쓸어낸 낙화처럼 수북이 쌓인 이름
미련 없이 버리자니 요것 한 장 남겨두자
결국엔 한 장도 못 버리고 다시 끼워 넣는다
멸치가 하는 말
'헤쳐하면 다 사는데 뭉쳐하면 다 죽는다'
뼈대 있는 자손이라
반역의 말 못하고
속내를 죄 내보이며 굴종의 삶 살았어
수산시장 귀퉁이에 말라서 뒤틀린 몸
서로가 닮았거니
볼품없다 흉보지마
이쯤에 고추장 찍어 허한 배나 달래소
짧은 만남 긴 이별
휘황한 우주쇼
유성우 내리는 밤
찰나의 만남은 긴 이별의 예고편
오감의 텔레파시로 타전하며 오고있다
경이로운 그 열연은
안무도 없는 연기
못 이룬 첫 사랑에 다짐만 풀어놓듯
집착에 휜 등허리를 투시하며 내린다
그러네, 무한 무량
허공의 시간 속에
한 생은 역마살로 닫히는 단막극
객석엔 떨기별이듯 반디만이 외롭다
고란이 닮은 그대
실비는 한이 맺힌 삼천궁녀 눈물인 듯
목어는 목을 빼고 빗소리에 몸이 불어
천년을 흘러 온 강에 속마음을 씻는다
단아한 절 한 채 다소곳이 손에 받쳐
고란초 한 잎 띄워 물 한 모금 마시면
풍경이 가슴에 울어 단청도 스며들어
종소리 여음 따라 고란이 닮은 그대
몸은 멀리 떨어져도 소식은 전해야지
백제의 따슨 숨결을 우표대신 붙인다
있수다
없는 것 빼고 다 있수다, 와서 수다 떠세요
it곁에 수다 쓰고, pun 밑에 있SUDA
자그만 고내 포구엔 둥지를 튼 언어퓨전
등대의 갈매기는 시낭송을 하는지
막 먹어도 질리잖는 그대의 수다 같다
침샘을 팡(pun) 터트리는 머그잔의 커피향
검은굴 * 자리
가마터 불꽃 자리 법당이 들어서고
부처님 앉던 자리 놀이터 그네 뛰네
한 세대 넘기기도 전
가뭇없이 떠나가
허벅진 누이 얼굴 범당의 풍경 소리
사위는 망막 속에 선연한 그 실체를
밟히던 잡초들만이
존재감을 드러내
*검은굴 : 제주에서는 가마窯를 굴窟이라 함. 생상된 그릇의 빛깔에 따라 검은굴과 노랑굴로 구분.
제주시 동광양에도 검은굴이 있었음
고향의 서낭당
마을의 이정표이듯 초가의 올레이 듯
한 굽이 돌아들면 동구에 당이 있다
세월의 인심 따라서 폐가처럼 잊혀 가는
울긋불긋 긴 헝겊에 이어놓은 명줄 따라
무병장수하여서 금의환향 하게 하소서
어머니, 그 어머니의 신앙보다 더 붉던 곳
빛바랜 타래지만 한 올 한 올 이어놓고
방패연 날리면 유년의 꿈 떠오를까
쳐다 본 팽나무 우듬지엔 까치집만 덩그레
산수유 눈이 붉다
-행주산성에서
부엌에서 손만 닦는 행주가 아니었다
행주가 해어지면 치마 잘라서라도
야문 돌 날라 던지며 산성을 지킨 결기
조총이 무력함을 예와 보고 알았다
8부 능선 저지하는 어머님의 돌팔매를
돌이켜 되 삭이는지 눈이 붉은 산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