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황병숙
수북한 폐지더미 방지 턱 넘어간다
시야를 가려버린 위태한 섬 횡단할 때
주춤한 도로의 차들
경적소리 요란하다
어쩌다 이름마저 잃어버린 섬 하나
손수레 돛대삼아 맨몸으로 떠다니는
가풀막 노인의 고도(孤島)로
소낙비 들이친다
지나던 손길들이 밀고 당긴 섬 수레
비 그친 길 위에 곰실곰실 너울대며
또 다시 굴러가는 섬
햇살처럼 환하다
어떤 택배
-정화경
비금도* 바닷물이 한 박스나 배달됐다
사각의 틈새로 행여 신상이 드러날까
테이프 입을 봉하고 모르는 척 앉아있다
밤새 몰래 뭍에 오른 야청빛 창창바다
어느 집 저녁 식탁을 물들이고 싶은 걸까
밀봉한 봉인을 뜯자 왈칵 쏟는 푸른 화두!
서덜밭 엎드려서 온몸으로 써내려 간
어머니 생애처럼 땅 붙안고 앉은 시금치
흙 묻은 잎사귀 하나 시퍼런 눈을 뜬다
시조는 천 년 묵은 산삼이다. 사랑을 주성분으로 하는 사람을 위한 명약이다. 사랑의 미학을 진하게 달이기 위해서는 모닥불을 피워 쉬엄쉬엄 오래 기다려야 한다.
많은 응모작 가운데 김수형의 ‘마디를 읽다’를 장원으로 올리는데 이의가 없었다. 시누대의 마디를 보고 어머니의 휘어진 손가락을 떠올리는 비유가 참신하다. 손가락을 통한 오늘의 현상에 나의 존재를 읽어내는 가열한 시편이다. “울음도 씻어 안치던 어린 날의 어머니”와 같은 형상화는 오래 조탁한 내공의 흔적이 역력하다. 탄탄한 세 수의 얼개 속에 원심력과 구심력이 서로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서술적 요소들은 조금 더 오랜 숙성을 필요로 한다.
차상에 오른 황병숙의 ‘섬’은 한 노인의 손수레에 실린 파지더미를 섬에 비유하고 있지만 결코 외로운 섬이 아니다. “잃어버린 섬 하나”는 노인의 전생이지만 “손수레”의 “맨몸”은 현실을 비관하지 않는 건강한 관찰력이 쓸모없는 삶을 쓸모 있게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설익은 표현들이 음보에 기대고 있다. 시조 창작의 맹점이다.
정화경의 ‘어떤 택배’를 차하로 택했다. 일관성 있는 구성은 원만했으나 중첩되는 표현법과 “화두”와 같은 사변적 관념어를 걷어냈으면 한다. 내 얘기가 아닌 남의 말을 하는 습관도 흠결 중의 하나다. 사유의 심화를 통한 확장이 정한의 씨를 여물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심마니가 되고 싶다. 꼭 지금이 아니라 오래 된 산삼을 캘 수만 있다면 외롭게 기다릴 수 있다. 조우리·임주동·이기선에게서 다음 기회에 크게 한 번 “심봤다”를 외치고 싶다.
심사위원: 박권숙·최영효(대표집필 최영효)